선고 / 이승우

 "저것은 문입니다. 저 문은 들여보내야 할 사람과 들여보내지 않아야 할 사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문은 사람을 차별합니다.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합니다. 열려 있기만 하는 것은 문이 아니지요. 문이 세워져 있는 것은 들어갈 사람이 있고 들어가지 않아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문이 세워져 있겠습니까? 더구나 여기 이 길에 말입니다."

 (중략)

 "그 수수깨끼는 아무도 풀지 못합니다. 적어도 이 검은 방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걸 풀지 못하면 이곳을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그러나 그렇게 말한 사람은 당신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겁니다. 길들은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합니다. 옆으로 꺾이기도 하고 빙 돌아가기도 하지요. 당신이 동쪽을 택해 걷기 시작했다고 해서, 또는 당신이 올라가는 길을 택해 걷기 시작했다고 해서 당신의 목적지가 반드시 동쪽이 되거나 하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이쪽으로 가도 길은 당신을 저쪽으로 데려다 놓곤 합니다.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러합니다. 당신은 이미 그 이치를 터득한 줄 알았는데요. 당신은 당신의 삶이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고 느껴왔지요? 그래서 세상을 모욕하고 저주하기도 했지요? 그러면서도 그 모습이야말로 당신이 견뎌야 할 세상과 삶의 참얼굴이라고 하는 인식을 수용하는데 주저하는 까닭을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나는 어떤, 보편타당한 원칙이랄까, 말하자면 삶의 틀을 잡아주는 규범 같은 것이……."
 검은 방의 주인은 다시 큰 소리로 웃었다. F는 그만 스스로 기가 죽어서 거기서 말을 중단해 버렸다.

 (중략)

 "자신의 고통을 특별하고 유별난 것인 양 과장하는 태도는 스스로에게는 위안이 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의 위안까지를 이끌어내지는 못합니다. 더구나 그 위안은 아주 하찮은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이곳에 오기 전에 비단이라도 두르고 있었습니까?"
 F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무언가 그자의 논리에 대항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의 정신은 한없이 창백했다.

 (중략)

 "누가 이 방에 문이 없다고 했습니까? 아무도 당신에게 그런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아예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당신은 수수깨끼를 풀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나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내 말이 틀렸습니까? 물론 당신을 비난하려는 뜻은 조금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니까요. 의심스러우면 지금 당신이 있는 쪽의 벽을 가만히 밀어보십시오. 원한다면 다른 쪽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손만 갖다 대면 벽은 문이 될 것입니다."
 F는 시키는 대로 했다. 몸을 바닥애 대고 누운 채로 손을 벽에 갖다대고 조금 힘을 주었다. 그러자 정말로 벽이 열리는 것이었다.

 (중략)

 "걱정할 것 없습니다. 왕은 한 가지 의무와 무한대의 권리를 가집니다. 한 가지 의무 때문에 천 가지의 권리가 허용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곳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왕이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빨리 되고, 어떤 사람은 늦게 됩니다. 차이는 그것뿐이지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왕이 안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비를 뽑는 이런 식의 선출방식이라면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가 않습니다. 누구나 왕이 됩니다. 왜냐하면 왕이 되지 않으면 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왕이 천 개의 권리의 대가로 지게 되어 있는 한 개의 의무란 바로 죽을 의무 입니다."

 (중략)

 "그렇게 슬퍼하거나 놀라워할 건 없습니다. 당신은 하루 전에 사형을 선고받는 사람의 운명의 가혹함에 대해 말하지만, 사실 이 세계에 들어온 순간 우리들은 모두 사형선고를 받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빠르냐, 늦느냐, 그 차이지요.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모든 것이 예정대로지요. 말하자면 운명이란 말입니다."

 (중략)

 "왜요? 안 됩니까?"
 "안 될 거야 없지요. 다만 불가능할 뿐입니다."
 "무슨 뜻인지요?"
 "말 그대로입니다. 가능하지가 않다는 거지요. 당신은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아무도 말리지 않고, 그 일로 벌을 받거나 하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곳을 빠져나가 다른 세계로 가는 일은, 거듭 말하건대,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당신은 500킬로미터나 되는 미로를 빠져나가야 합니다. 당신도 참여해서 만든 미로입니다. 역사의 시작과 함께 사람들은 미로를 만들어왔습니다. 이 미로야 말로 이곳에 사람이 살아왔고, 또 살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물입니다. 미로의 곳곳에는 방이 있는데, 그곳에는 물과 불과 사나운 동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물론 무서운 벌레떼들도 있습니다. 어떤 벌레는 당신 키보다 더 크지요. 누구도 미로를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만에 하나 설혹 미로를 빠져나갔다 하더라도 기뻐하기는 너무 이릅니다. 당신이 미로를 빠져나갔다 하더라도 밖으로는 아직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것입니다. 미로를 빠져나간 당신이 있게 될 곳은 지금 당신이 서 있는 발아래일 것입니다. 땅 밑 말입니다. 미로의 총길이가 500킬로미터라고 했지만, 그것은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그 뒤죽박죽의 길을 제대로 찾아갔을 때의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적어도 3,000킬로미터 이상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길을 찾아낸다면 다행이지만요.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마침내 도달할 곳이 바로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란 말입니다. 거기서부터는 물론 미로는 없습니다. 그 대신에 아예 길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아직 길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서부터는 당신 스스로 길을 만들어서 나가야 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그곳에서부터 당신 혼자서 길을 만들어 다른 세계로 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당신의 전 생애의 세 배가 걸립니다."
 "하지만 이곳으로 들어올 때는 길이 있었지 않소? 그 길을 타고 가면 될 것이 아니오?"
 "잘 생각해 보시오. 길이 있었소?"
 "있었던 것 같소."
 "잘 생각해 보시오. 길이 있었소?"
 "잘 모르겠소. 나는 단지, 내가 여기에 왔으니까 길이 있을 것 아니냐고, 그래요, 그런 차원의 상식을 말한 겁니다. 그게 당연하지 않아요?"
 "그것이 어째서 당연하지요? 오는 길이 있었으니까 가는 길도 있을 것이라는 당신의 기대는 오는 길이 곧 가는 길이라는 아주 평범하고 단순하고 유치하고 소박한 생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견 타당해 보이나 실제로는 전혀 근거가 없는 연상입니다. 더구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인데, 이곳으로 오는 길은 없었습니다. 당신은 이곳으로 오고 싶다는 당신의 그 집요한 의지로 길을 만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나가겠습니다."
 "단언하건대 당신은 미로를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오. 당신이 미로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고 엉뚱하게 자신을 가진다면 그건 크게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미로를 만들지만 미로는 알지 못합니다. 물론 당신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죽음의 한계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그 한계를 벗어나 바깥 세계로 이주하려는 욕망은, 물론 그 역시 자유롭게 시도할 수야 있는 일이지만, 실현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중략)

 그리고, 또 상당히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어느 날 저녁 만찬 시간에 그는 자신의 음식 접시에서 콩알만한 크기의 금을 발견했다. 피할 수 없는 시간이 그에게 찾아왔다. 그리하여 그는 왕이 되었다. 그것은 다음 날 그가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라는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단 하나의 죽을 의무를 위해 천 개의 권리를 쓸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단 하루 동안. 그 하루 동안 그는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미로를 만드는 작업으로부터 열외되어 원한다면 음식을 양껏 먹을 수도 있었고, 실컷 잠을 잘 수도 있었다. 열 명의 여자들을 불러 술시중을 들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왕으로 보낸 마지막 하루 동안 한숨도 자지 않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한 명의 여자도 부르지 않았다. 그는 단 한 개의 권리도 쓰지 못했다. 하루는 그렇게 빠르게 지나갔다.
 이튿날 저녁, 새로운 왕으로 선출된 사람은 처음부터 곧잘 그의 말상대가 되어주곤 했던 그 키가 작고 얼굴이 길쭉한 사람이었다. F는 그에게 왕관을 건네주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사람이 F에게 선고를 내리기 전에 쓸쓸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나지막하게 물었다.
 "깨달았습니까? 하루애 한 명씩의 왕이 필요한 까닭을……?"
 F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언제부턴가 더 이상 그 사실을 궁금해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그 이유를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저들은 내일 나의 살을 먹을 것이다. 나의 살을 뜯어먹고 나가 자기들이 살아 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자기들을 이곳에 영원히 묶어두는 미로를 애써 만들 것이다…… 라고 F는 중얼거렸다. 그의 표정 또한 한없이 쓸쓸했다.
 이윽고 천둥 같은 선고가 그의 목 위로 떨어졌다.
 "이 사람은 왕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이 사람에게 우리를 위해 사형을 선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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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검은 나무』, 「선고」, 민음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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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에 대한 사유.
읽으면서 계속 카프카의 심판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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