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권




나는 그 사나이의 사진을 석 장 본 적이 있다.


  

  서문의 시작이다. 그리고 세장의 사진들이 보이는데 앞에 있는 사진들은 사나이가 제법 익살을 떨고 있는 모습이지만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 어떠한 표정도 없이 평범한 얼굴을 한 노년의 사나이다. 더 이상 익살을 떨지 않는 사나이의 모습은 어째 기괴하기까지 하다. 섬뜩하고, 역겹다.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의 자전적인 소설로 알려졌기 때문이리라.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조건이 존재한다. 그러나 ‘요조’는 그 자격이 미달된 남자다. 그렇다고 해서 ‘요조’가 인간의 ‘자격’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가? 그것도 아닌 듯하다. 그가 하는 행동이라고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익살을 떠는 것뿐이다. 그것은 또한 타인의 앞에서 어떻게 대할 줄 몰라서, 사회화가 덜 된 주인공이 타인들 앞에서 가면을 쓴 행위일 뿐이다.

  실제로 이 소설의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는 다섯 번의 자살시도 끝에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자살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자이 오사무는 근본적으로 외로운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자살시도를 할 때 다른 사람과 함께 자살시도를 했으며 동반자살을 한 사람만 죽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이 그토록 그를 힘들게 했을까. 다섯 번이나 자살을 시도 하다니.
  소설에 투영된 ‘요조’의 모습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모습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집안 배경같은 소소한 것들이 말이다. 소설책에서 누군가는 이 소설이 ‘여린 심성의 젊은이가 인간들의 위선과 잔인함에 의해 파멸되어 가는 과정을 그렸’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에서 ‘요조’라는 젊은이가 인간 사회에 소속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느끼지도 못했고 요조가 타인들에 의해 인간실격으로 치부된 사람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문제는 그의 천성 보다는 사회화의 부재에 있었고 소설에 나오는 다른 인물들의 위선에 못지 않게 주인공 또한 나름의 위선을 가진 인물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물론 개개인마다 시각차가 있을 테지만 인간 실격을 읽으면서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이 소설이 소설자체로서 재미가 없고 매력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분명 이런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많이 존재한다. 사회가 점점 개인화 되고 인간들이 외로워지면서 사회적응에 실패하는, 새로운 의미의 ‘인간실격자’들이 존재하는 사회이다. 그 사회 속에서 요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소설 속에서 요조는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갈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지나감이 끝일까. 모든 것들이 지나가기는 하는 걸까.

  문득,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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